수필 -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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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달팽이

김승길

사실 나는 지금까지 달팽이를 마워한 적은 없었다. 그 느려터진 속도로 제 집을 등에 업고 이동하는 모양을 보면 이 쾌속의 시대에 살아 남아있는 것이 고맙고 다행이다 싶어 연민의 애정이 있었다.


우리 밭 상추에 입을 댈 때도 얇은 잎은 건드리지 않고 두꺼운 입줄기에 생채기 정도의 흔적을 남긴다. 먹고 사는 방법도 얌전하구나. 기특하게 생각하였다. 이웃에게 나눠준 상추를 먹어 본 사람들도 달팽이 흔적을 보고 오히려 반가웠다고 했다.


김매주면서 만나는 달팽이들은 손으로 깨질세라 얌전하게 집어 바로 옆 산 풀숲에 던져 이주시켰다. "사람들이 애써 키운 작물 먹지 말고 이제부터는 산 속에서 자연식하며 살아라" 그런데 고구마순 심은 지 며칠 안돼서 보니 잎들이 거의 모두 그물처럼 구멍들이 나 있었다. 


무슨 벌레일까? 아무리 저인망식 수색을 해도 범충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에 나가보니 이건 달팽이들의 아침식사 시간. 고구마순을 사온 농약 상에 가서 물었다.


"달팽이가 고무가 잎도 먹나요?"

"안 먹는게 있나요. 상추요? 상추는 별로 좋아 안해요."


약을 사서 이틀동안 두 번 뿌려주었다. 고구마 밭에 약을 뿌려준 것도 처음이다. 유기농이라고는 해도 뿌리먹는 것이니까 괜찮겠지 하면서. 더구나 어린 잎이여서 곧 새잎들이 자랄 테니까.


약 뿌린 다음날부터 죽은 달팽이들과 온 내장을 있는대로 길게 늘어뜨리고 널부러진 달팽이들이 보였다. 덜 죽은 놈들은 무자비하게 밟아 압사시켰다. 그동안 비가 자주 내려 달팽이들이 번식이 많이 된 모양이었다.


자두나무 가지치기를 하다가 달팽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2미터가 훨씬 더 되는 나무 꼭대기 잎에 달라붙어있었다. "이 원쑤야!"


이전과 달리 땅에 놓고 흠씬 밟아주었다. 전지 작업이 끝나도록 다른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내 내 행동에 부끄러워졌다. 


저렇게 많은 잎들, 더구나 가지치기 하는 마당에 달랑 달팽이 한 마리에 분기탱천하여 재판도 없이 즉살처분하다니. 이 달팽이는 제 몸길이의 몇 백 배가 넘는 이 나무 꼭대기를 도대체 몇 시간이나 걸려서 기어 올라간 것일까?


그런데 말입니다.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부추 잎들에 달팽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파티를 즐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도대체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 거지요?


무엇 때문에? For what? 하느님은 먹이사슬을 만들어 놓으셨을까? 또 그 꼭대기에 사람을 앉혀 놓으셨을까? 하느님은 결정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즐기시는 것을 아닐까? 잘나도 못난 사람들의.


나는 왜 글도 제대로 쏠 줄 모르면서 늘 하느님과의 싸움으로 끝을 맺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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