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문단-수필] 아름다운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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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화문단-수필] 아름다운 황혼

정 경 임

추운여름이 있을까만 올여름 더위 또한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아파트단지 내에 있는 어린이놀이터에는 한더위를 비켜 오후 4시가 지나면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걸리고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로 주민들이 모여든다. 젊은 엄마도 있지만, 절대 손자를 보는 일 없을 거라고 입찬말을 했던 나를 포함하여 대개는 할머니들이다. 그러나 때론 익숙하지 못한 솜씨로 어색하게 유모차를 밀고 나오는 할아버지들도 더러 있다.

  오늘도 예쁜 리본을 머리에 꽂은 손녀를 데리고 106동에 사는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한때는 남편과 아버지의 도리를 다하고 가족 앞에서 호통 치며 당당하게 살았음직해 보이는 할아버지는 수다를 떠는 젊은 엄마들의 모습을 넌지시 바라보며 빙긋이 웃는 아직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이번에는 빨간 유모차를 밀고 나와 저만치서 수줍은 처녀처럼 다소곳이 아기만 내려다보며 나무그늘을 찾아다니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첫눈에 정년퇴임한 교육자이거나 공직자였을 것 같아 보인다. 보진 않았지만 저 할아버지의 오른쪽장지에는 아마도 굳은살이 박혀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 밤잠을 설치며 소중한 사춘기도 접어둔 채. 펜과 씨름을 했을 손가락, 청운의 꿈을 이루기 위해 손에서 펜을 뗄 수 없었을 대학생활, 어렵사리 잡은 직장을 유지하기 위해 노상 책상 앞에서 사용했을 손가락을 상상해보았다.

  이번에 유모차를 밀고 나온 할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한적한 곳을 찾아 사색에 빠져있다 어쩌면 당신이 걸어온 길보다 더 치열한 경쟁 속을 걸어갈 수밖에 없을 어린 손자가 걱정스러워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그것은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과정이라는 이야기를 조용히 침묵으로 아기에게 속삭이는지도 모르겠다.

  또 있다. 아기가 토실토실 한 것으로 보아 아기의 기본 체중을 훨씬 넘었을성싶은 달덩이 같은 손자를 데리고 나와 아녀자들 대화에 곧잘 끼어드는 넙데데한 1003호 할아버지다. 마음씨가 착하고 털털해 보이는 이 할아버지는 그 인상대로 세상을 편하게 사셨을 것 같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사시는 것 같다 그리고 늘그막에 아들집에서 손자재롱이나 보며 살아 갈수 있는 지금의 안정된 노후를 그런대로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은 아주 행복해 보이는 할아버지다.

  그런데 늙기는 매한가지거늘 할머니와 달리 서툴게 유모치를 밀고 나오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는 할머니와는 달리 조금은 짠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할아버지에 대한 추억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에게는 무서운 할아버지가 계셨다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오고 싶어 할 때면 우리할아버지 돌아가시면 와.” 할 만큼 무서운 할아버지가 계셨다. 고을 군수가 부임하여 인사를 오지 않으면 단걸음에 달려가 군청 지붕이 날아갔다. “아니 군수는 부모두 없어? 어른도 몰라보는 위인이 군민을 다스린다구?” 할아버지의 역정은 군수영감을 난감하게 했다. 인근에선 이런 우리 할아버지를 호랑이 할아버지라고 무서워들 했지만 그 호랑이할아버지에게도 자상하고 따뜻한 가슴은 있었다.

  이른 봄 해빙기가 되어 땅이 들썩이기 시작하면 벌레 죽으니 뜨거운 물 땅에 버리지 말라 당부 하시고 보릿고개에는 굶는 사람을 생각하라시며 흰쌀밥을 먹지 못하게 하실 만큼 정도 깊으셨다. 난 이런 우리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우리할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집안의 경제권을 놓지 않으셨으며 가족의 위계질서를 분명히 하셨다. 환갑이 가까운 아들에게도 언제나 당당하고 권위적인 아버지였으니 집안의 모든 결정 또한 할아버지의 권한이었고 온 가족은 할아버지의 결정에 따랐으며 집안은 늘 평화로웠다.

  가을이면 새끼줄에 꿰어 처마 끝에 주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 하나도 할아버지의 승낙 없이는 맛도 볼 수가 없을 만큼 무섭던 호랑이 할아버지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그 호랑이 할아버지가 내 할아버지여서만은 아니다. 비록 지천인 곶감하나도 할아버지 허락 없이는 먹을 수가 없었지만, 집안의 모든 결정권을 아들 며느리에게 일임한 채 감히 손자손녀의 버릇없는 행동을 보고도 나무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순하다 순한 현대판 할아버지를 보며, 옛날 내 할아버지가 저러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내겐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리아들 말대로 나는 1세기 전 사고가 아직도 익숙한 탓일 런지는 모른다.

  할아버지는 항상 집안의 웃어른이어야 하고, 가족의 존경과 사랑을 마땅히 받아야하고, 어떠한 상황에서건 어떠한 처지에서건 할아버지의 자리는 거기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나의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할머니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할아버지처럼 자식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처신으로 살아오지 못했다는 것이 더 큰문제다.

 

마지막 순간까지 위엄과 품위를 잃지 않으셨던 우리할아버지의 위치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내 마음은 오늘도 몸 둘 바를 몰라 이렇게 좌불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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