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약속 그리고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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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약속 그리고 책임

‘어이가 없다’는 말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해서 황당하다는 뜻이다. ‘어처구니 없다’와 같은 말이다.

 

어이가 없든, 어처구니가 없든 생겨서는 안 되는 일이 생겨 황당하다는 의미는 같다.

 

지난 2014년 4월 6일,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고교생 등 승객 304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모두가 익히 아는 일이라 새삼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너무나도 아픈 사고를 다시 기억하는 것은 유사한 대형 참사가 또다시 일어났기 때문이다.

 

10월 29일 밤 10시 22분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 골목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로 15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숨을 거뒀다. 참담하다 못해 황망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는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약속을 했다. 하지만 세월호 이후 8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도 국민은 안전 보장 없이 무대책에 희생됐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에 대해 무한 책임이 있음에도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국민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1월 1일 오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보고에 출석해 사과하면서 한 말이다. ‘이태원 참사’ 사흘 만에 밝힌 사과다.

 

이외에도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경찰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사고 당일에는 침묵하다가 뒤늦게 사과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의 진정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모두 약속에 대한 무책임한 말들만 하고 있다.

 

법은 약속과 같다. 지키지 않으면 소용없다. 장관에서 청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직자들이다. 평상시에도 국민을 위해 일을 하는 공복(公僕)이다. 한순간의 실수나 잘못은 전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공직자의 책무를 지키는 것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례가 너무 많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유사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도 한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돌아서면 끝이 돼버린 경우가 다반사다.

 

대통령이 서둘러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합동분향소에 조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책임론에 대한 우려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렇게 국가애도기간이 지나면 세월호 참사 때처럼 명확한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 없이 슬그머니 책임 여부가 불명확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사회적 대참사가 발생하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패닉에 빠지게 된다.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세월호 이후 적잖은 시일이 지났으나 아직도 일상이 어려운 사람이 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이번 참사에서 대통령부터 경찰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책임에 대해서는 역시나 나서는 사람이 없다.


언제까지 후진적인 모습이 반복될지 안타깝다. 이제는 더 이상 사후약방문 대책이나 책임 전가·회피해서는 안 된다. 국가는 국민 안전에 대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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