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봄이 오는 길목 ‘강화 연미정(燕尾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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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봄이 오는 길목 ‘강화 연미정(燕尾亭)’

강화 8경(江華 8境)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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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8경' 중 가장 풍경이 좋은 곳으로 꼽히는 '강화 연미정'(사진=강화군청)>

 

강화 8(江華 8)’ 중 가장 풍경이 좋은 곳으로 손꼽히는 강화 연미정(燕尾亭)’

 

경기도 김포시와 인천광역시 강화군을 연결해주는 강화대교를 건넌 후 바로 우회전해서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으며, 물줄기가 이곳에서 서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흐르는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같다고 해서 제비 연()’, ‘꼬리 미()’()를 써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燕尾亭)’이라 지었다고 한다언제 세워졌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고려 고종 13(1244) 최충이 지은 고려시대 사립교육기관인 구재학당(九齋學堂)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시켜 55명을 뽑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연대를 가늠케 한다.

 

정자는 높다란 주초석 위에 세워져 있으며, 앞면 3·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에는 수백년 수령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그 뒤 조선 중종 5(1510) 삼포왜란(三浦倭亂) 때 큰 공을 세운 무신 황형(黃衡)’ 장군에게 이 정자를 하사했다고 한다. ‘황형은 삼포왜란 때 전라좌도 방어사로 제포(薺浦)에서 전공을 세우고 경상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됐다. 그 후 도총관·훈련원지사를 거쳐 중종 7(1512) 함경도 변경에서 야인(野人)이 반란하자 순변사(巡邊使)’로서 이를 진압하기도 했다. 이어 평안도·함경도 병마절도사를 지내고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연미정 인근에는 황형 장군의 택지비가 있는데 이곳이 황형 장군의 옛집터임을 알 수 있다.

 

역사의 아픈 기억

 

한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던 이 작은 정자는 아름다움 만큼이아 역사적 비애를 담고 있다.

 

1627(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후금과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체결한 장소다. 후금이 조선으로 쳐들어오자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하면서 저항했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이곳에서 후금과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오랑캐라 여겨온 후금을 형제처럼 대우해야 하는 굴레를 지게 됐다.

 

, 현재는 자유로이 출입이 가능하지만 6.25 사변 이후에는 민간인통제구역으로 민간인의 발길이 멈추었던 곳이기도 하다정자에 오르면 유도(留島)’와 북녘땅인 개풍군이 조망돼 지척에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의 아픔을 달래주기도 한다머무르섬이라고도 불리는 무인도 유도(留島)’에는 재미있는 내용이 있는데 지난 19968월 경기북부지역에 집중호우가 이어지며 대홍수가 발생해 북한의 소 한 마리가 홍수에 휩쓸려 내려왔으나 비무장지대에 위치해 있어 구조가 불가능했다.

 

지뢰에 발목까지 다친데다 겨우내 굶주려 죽기 직전에 이르자 정부에서 유엔사에 대북통지문을 보낸 뒤 19971월 대한민국 해병대가 부엉이 작전을 통해 5개월 넘게 고립돼 있던 황소를 구출했다.

구출 이후 그 소는 평화의 소라고 불리며 사육되다가 19981월 북제주군의 한우 암소 통일염원의 소를 신부로 맞아 폐사 전까지 7마리의 새끼를 낳으며 평화의 상징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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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8경' 중 가장 풍경이 좋은 곳으로 꼽히는 '강화 연미정' (사진=강화군청)>

 

 

전쟁과 자연재해가 남기고 간 상처

 

수많은 전쟁 속에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연미정에도 크고 작은 상흔이 남아있다.

 

연미정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대부분 파손된 것을 1744(영조 20) 유수(留守) 김시혁이 중건했고 1891(고종 28) 조동면(趙東冕)이 중수했으며, 1931년 옛 인천 거부(巨富) 유군성(劉君星)의 특지(特志)로 보수하는 등 여러 차례 보수했다.

 

, 6·25전쟁 때도 파손돼 전후에 중수했고, 1976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했다. 서남쪽 모서리의 기둥은 6·25전쟁 때 포탄에 맞아 세 동강 난 것을 붙여 다시 세운 것이다원래 연미정을 중심으로 좌우에 500년이 넘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무성한 나뭇가지를 펼치면서 정자를 감싸 안고 있었으나, 그 중 좌측에 있던 한 그루가 지난 2019년 발생한 태풍 링링에 의해 완전히 부러져 고사(枯死)해 한 그루만이 쓸쓸하게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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