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약자와 강자 그리고 현명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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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약자와 강자 그리고 현명한 자’

삶에 대해 어느 일가견이 있는 고수가 이런 말을 실었다. “약한 자는 복수를 하고, 강한 자는 용서를 한다. 그리고 현명한 자는 무시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쉽게 받아들이면 쉽겠지만, 필자 같은 하수 입장에선 머리가 좀 복 잡해지는 문구다. 복수도 힘과 집념이 있어야 한다. 

격투기 경기에서 흔히 벌어지는 복수전 소위 리벤지도 그 만큼 강해야 리턴 매치가 벌어지는 것이다. 약자는 복수한다는 표현보다 복수 밖에는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때가 아닌가 싶다. 강자는 용서를 한다고 했다. 그 말에는 동의한다. 어느 영화에 나오는 대사가 생각났다. “용서도 힘 있는 자가 하는 거야” 구타를 당해 처참하게 일그러진 상대 방의 일그러진 얼굴을 내려 보며 악당이 한 대사였다. 

그래서 그 순간 악당이 한편으론 멋있게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 용서는 강자가 하는 것이지 약자는 용서가 아닌 포기가 될 것이다.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한다고 해도 용서는 관용일 뿐이다. 약자가 하는 용서는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어울리지도 않고 이해도 어렵다. 푸념 같은 중얼거림의 하소연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현명한 자는 무관심을 택한다고 했다. 어떤 의미로 본다면 이미 초월을 한 사람의 행동으로 보인다. 아니면 정말 그 정도의 힘이나 배경이나 인격적 통달이 상대에게 커다란 데미지나 피해를 입었어도 무관심하게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계를 살짝 벗어나 신계의 초입에 있어야 가능하지 않나 싶다. 아니면 복수마저도 귀찮게 느껴지 는 내공에 도달한 걸수도 있다. 어쨌든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용서만도 어마어마한 수양이 쌓여야 하는 데 무관심은 아마 죽기 전까진 갖추기 어려운 선택일 것이다.

토굴 앞에서 햇볕을 가리고 서있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꺼지라고 일갈한 디오게네스 정도가 아니라면 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찌보면 약자가 행하는 복수가 제일 인간미가 풍긴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복수라는 것이 또 다른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처절하지 않다면 어느 정도의 복수가 인간사회를 위한 ‘필요악(必要惡)’일 수도 있을 것이다. 왼뺨을 얻어맞고 또 오른 뺨까지 내 줄 정도의 도량은 갖추기도 어렵고 오른 뺨 대신 딱밤이라도 한 대 치고 돌아 서는 게 아마 전쟁과 지옥 같은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 사회를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복은 곧 복수란 의미와 유사하다. 인간사, 옳고 그름의 귀감을 세움이 자신을 다스리는 치세의 기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차피 약자와 강자, 그리고 현명한 자들의 집합 속에 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하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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