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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마당] 폭염마당에 나와 등받이 의자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저녁놀에 물든 구름들이 함께 어울려 빠르게 가고 있다 한참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눈시울이 더워진다 과연 저곳에 그리운 사람들이 있을까, 해는 한참 기울었는데 바람은 여전히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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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마당] 사랑아사랑아 니가 죽도록 배고파 본적이 있느냐 인연의 텃밭에서 씨도 뿌리지 못하고 곧바로 골문안으로 직행해 본적 있느냐 니가 나고 내가 너인 줄도 모르는 세상에 잔디밭에서 네잎 크로바를 찾는다고 제 때에 나타나 준적이 있느냐 외롭고 그리운 날에는 한 뼘만큼 더 멀리 가 있고 니가 보고파 내가 미치는 날에는 세상 어디에도 그림자조차 안 보이니 사랑아 정녕 죽도록 배고파 본 적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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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마당] 충치깨닫게 된 순간 가슴이 쿵. 나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는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를 다시 마주해야 하는 순간 눈물 뚝뚝 흘리며 그와 이별하는 순간 나는 다짐한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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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향기-수필] 우리 엄마우리 엄마 고향은 베트남이다. 엄마는 20살까지 베트남에서 꿈과 희망을 키우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를 만나서 먼 나라인 한국으로 오게된다. 엄마는 아빠 하나 믿고 한국에 오셨지만 처음엔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것이다. 한국에 와서 적응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나와 동생을 낳으시고 어려운 한국어를 무작정 배우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를 도와 집안일도 열심히 하셨다. 엄마는 한국 생활에 적응도 잘하셨고 한국만도 금세 늘었다고 한다. 만약 내가 엄마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볼 때가 많다. 나라면 가족들이 사는 베트남으로 다시 가고 싶어서 한국 생활에도 적응도 잘 못하고 힘들었을 것 같은데 엄마는 빨리 적응하려고 노력하셨던 것이다. 우리 엄마의 꿈은 선생님이셨지만 한국에 오면서 그 꿈을 포기하고 동네 보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시다가 초등학교 돌봄 선생님이 되셨다. 멀고 먼 한국에서 자신의 어릴 적 꿈을 이루신 것이다. 엄마는 아이들을 좋아하셔서 그 직업이 알맞다고 생각했고 힘이 들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어서 나는 너무나 뿌듯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엄마께서 내가 다니는 학교로 발령이 나셨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처럼 나도 우리 엄마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엄마를 부르다보니 존경스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나와 동생이 싸울 때가 있는데, 그때 엄마께서 충고를 잘 해주셨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던지 잔소리로 알아듣고 혼내려는 것으로만 드렸다. 근데 지금 와서 보니까 엄마가 들려주는 인생에서 필요한 충고인 것 같다. 나는 엄마의 고향이 베트남이라 다문화가정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나쁘게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좋은 점은 너무 많다.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베트남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 외할머니댁에 가면 말이 통하지 않지만 엄마가 베트남어를 알려주셔서 조금이나마 소통을 할 수 있어서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고 한국에 나와 있는 베트남 사람들이 가끔 모여서 베트남 요리를 해먹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시간이 뜻깊은 것 같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자주 못 가는 엄마와 이모들이 함께 모여 만든 음식을 먹고 스트레스도 풀고 베트남어로 얘기하는 것이 엄마에게는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다. 나와 동생을 낳고 기르는 것만도 힘든 일인데 열심히 노력해서 선생님의 꿈까지 이루신 우리 엄마가 너무 자랑스럽다. 나도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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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선 제8기 유천호 군수의 당선을 축하한다강화는 역사적으로 국가에 위난이 발생했을 때, 제2의 수도역할을 수행했던 지역이다. 1232년 몽고가 고려를 침략해 왔을 때(고려 고종) 고려 조정이 천도를 한 곳이며, 1627년 정묘호란 당시 인조가 피신하여 몸을 의탁했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게다가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1875년 운요호(雲揚號) 사건 등 외세와의 충돌현장이 바로 강화도였다. 강화군은 국난(國亂) 때마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국력 신장의 디딤돌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4번째로 큰 섬이며, 강화 고인돌을 비롯하여, 마니산 참성단, 진달래 축제, 강화새우젓 등 선조들의 역사적 흔적이 숨 쉬고 있으며, 강화인삼, 화문석, 순무 등 지역 특산품이 즐비한 고장이기도 하다. 아울러, 서해 3대 일몰 촬영지로 소문난 화도면 장화리 일대의 갯벌과 전등사, 동막 해변 등 명승지로 국내외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위국충절, 명승(名勝)의 고장 강화도 주민들이 지난 제 8회 지방선거에서 유천호 무소속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하여 군수로 선출했다. 이는 강화도에서 태어나고 배우면서 성장한 지역 토박이 유천호 후보에 대한 믿음과 신뢰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강화군수는 강화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강화군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때문일 것이다. 강화 고등학교 총동문회장을 지낸 것을 필두로 인천광역시 재향군인회 회장, 인천광역시 생활체육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지역사회를 위해 널리 봉사한 그의 애향정신이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군수에 당선되는 영광을 안겼다고 할 수 있다. “오직 강화군의 발전과 군민의 행복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 나가겠다.”는 그의 당선소감에서 그가 지닌 순정한 목민의식을 엿볼 수 있다. 기실, 유천호 군수는 군민들이 잘 알다시피, 낙선과 당선 그리고 낙천(落薦)이라는 부침을 수없이 겪고 이겨낸 인물이다. 어쩌면 오뚝이 인생이다. 그런 그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군정(郡政)을 자임한 연유는 그가 토로한 당선 소감에서 ‘강화군의 발전과 군민 행복’을 반복하는 탈이념적 실용정신에서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군수의 실용정신은 산적한 강화군의 과제들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쳐다보고 있을 수가 없다는 토박이 정치인이 지니는 태생적 애향정신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천호 군수는 강화군 민선 8기 공약으로 ▲광역 교통망, 도로망 및 대중교통 확대 ▲마을 중심 여가시설 확충 ▲적시적소 생애주기별 맞춤 복지 ▲안정적인 농·축·수산업 및 소상공인 지원, 청년 취·창업 지원, 주민재산권 보장 ▲관광 인프라 확충 등 다섯 가지를 내세웠다. 이러한 공약 이행을 위해 8개 분야, 116개 세부실행 방안을 마련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매월, 분기별, 연도별로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군청 홈페이지를 통해 군민들에게 밝히려 하고 있다. 유 군수는 공약사업 하나하나가 모두 역점사업이라고 하면서 일자리가 더 풍족해지고, 교통이 더 편리한 강화군으로 도약(跳躍)시키겠다고 한다. 물론 유 군수는 군정을 잘 이끌어 갈 것으로 기대한다. 그는 인천 시의원과 강화군수를 지내면서 체득한 경륜을 바탕으로 의회와 행정단체장 사이에 생기는 견제와 균형 잡힌 행정력을 잘 조율해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가 않을 것이다. 군수는 그 본질에 있어서 행정에 대해 견제가 목적인 시·도 의원과는 다르다. 정책현안이나 예산절충을 위하여 인천시장과 인천시 의회 의원들을 끊임없이 만나야 하고, 다른 지역 자치단체장과도 연대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천호 군수의 당선을 축하하는 것은, 그가 내건 주요 공약들이 일자리 창출, 출산보육 지원, 교육 지원, 주거·정주 여건 개선, 도서(島嶼)연계, 특수상황 지역개발 등 미래형 비젼 사업들이기 때문이다. 미래 지역민들의 행복을 위해 매진하는 노익장 유천호 군수의 군정에 격려의 박수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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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문단-수필] 기주 떡과 내리사랑(210508)어린이날은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어버이날은 자손들이 부모와 웃어른들에게 효심을 전한다. 항상 상경하애(上敬下愛) 하며 사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잘 이행되지 않는 것이 세태인지라 꽃피고 따뜻한 오월만이라도 특별히 ‘가정의 달’로 정하고 가족 사랑과 화목한 가정을 이루자고 하는 것이다. 나아가 어린이를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자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부모에 대한 효도를 더욱 권장하기 위해 ‘어버이날’을 만들었다. 지난주 토요일인 5월 1일은 큰 소녀 딸 생일이었다. 아내가 전날부터 끓인 미역국 통과 기주 떡 상자를 승용차에 싣고 부평으로 향하였다. 점심때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생일 축하와 오찬을 나누기 위해서다. 기주 떡은 어제 어느 분이 가정의 달을 맞아 준 선물이다. 포장을 뜯어서 아내와 함께 하나 꺼내어 먹어보니 아주 맛이 있었다. 옛날 어렸을 때 잔칫집에서 먹던 그 맛 그대로다. 아내가 시 포장한다. 큰 손녀가 기주 떡을 좋아하니 내일 아이들과 함께 먹자고 한다. 아마 자식의 입으로 들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이 떠올랐나 보다. 이날은 닷새 뒤의 어린이날을 겸한 생일파티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가운데 오찬을 즐겼다. 역시 기주 떡은 할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여 한국 떡의 진가를 입증시켰고, 가족들의 미식(美食)감을 충족시켜 주었다. 한주 후 토요일, 어버이날이다. 부평에서 아이들 가족이 강화로 오겠단다. 여기에 아내가 “강화는 관광지여서 휴일 오전에 오는 길이 막히고 오후에 가는 길도 막히니, 너희들이 오는 것보다 차라리 우리가 가는 것이 역방향으로 길이 막히지 않으니 우리가 가마. 너희들 너무 고생한다.”고 하면서 역제안 했다. 맞는 말이다. 합리적으로 결정되었지만, 사실은 어버이날 부모가 찾아 효도한다고 고생할 것 같아 부모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에서 내린 결과리라. 우리 내외는 딸네 집으로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저녁 때 아내와 큰 처형이 전화 통화를 한다. 친정 쪽으로 가장 웃어른인 큰 언니에게 문안을 하는 격이다. 이웃 도시에 살고 있어 평소에도 수시로 전화하는 편이다. 그런데 옆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로 보아 처형의 심사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았다. “그래 언니가 이해해야지 뭐, 어찌하겠소.” 아내가 다독인다. 내용인즉, 전날 어버이날을 맞아 막내딸 S가 엄마 드시라고 기주 떡 한 상자를 들고 왔다. 이상하게도 지난주 아내가 손녀딸에게 갖다준 그 떡과 똑같은 것이란다. 그 떡을 받아들고 무심코 먹어 치울 처형이 아니다. 처형은 포장은 뜯어 볼 생각도 없다. 겉모양만 봐도 군침이 넘어갈 만한 떡이 자식들 입속에 들어가는 모습이 그려진 뿐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15분 거리에 살고 있는 아들 집으로 향한다. 외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집에 와있을 손자와 휴일이지만 출근할 아들이 집 나서기 전에 떡 한 덩어리 먹일 심산이었다. 그런데 오산이었다. 아침 8시인데 이미 아들은 출근해 집에 없고, 며느리와 손자들은 아직 이불속이 아닌가. 자식 사랑하는 어머니 마음은 억장이 무너진다. ‘휴일에 쉬지도 못 하고 출근하는 남편 배웅도 안 한다니!’당신이 고생해서 낳아 기른 아들은 회사에 나가는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던 손자 놈들도 뭐 나은 게 없다. 모두 잘못된 것 같다. 그것도 한참 빗나갔다. 그런데 이날 오후, 며느리가 손자들을 데리고 외가댁에 문안인사 드리러 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설상가상이다. 처형의 이번 어버이날은 검푸르게 덮인 먹구름 날이다. 대략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는데... 다음날 일요일, 아들 내외와 손자들 전 가족이 어머니께 어버이날 인사차 방문했다. 물론 해명도 있었다. ‘어버이날은 애 아빠가 회사에 출근해야 하므로 전 가족이 올 수 없어서 부천의 외가를 다녀오고, 다음날 일요일에 전 가족이 어머니 찾아오려고 계획했었어요. 물론 사전에 고모한테 문자로 알려드렸고요. 어머니께 직접 전화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리하여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진행되었던 할머니의 ‘기주 떡, 내리사랑’사건은 해피엔딩을 끝났다. 이날 처형 댁에서는 온 가족이 기주 떡을 나눠 먹으며 다시 웃음꽃을 피웠다. 그래서 가정의 달은 행복의 달인가보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하지 않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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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마당]연두빛에서 초록으로 일어선 생명의 꿈틀거림 말없이 쑥쑥 다투듯이 서로 기대며 자랑이랄 것 없이 스스로 부비며 더불어 살아 가잔다. 이름 짓지 않아도 누가 불러주고 보아주지 않아도 고요속에 밤새워 눈물, 고통 감추고 견디어 냄의 해탈 사람만이 이겨내고 감내하는 게 아님을 보이듯 차곡차곡 고이 속으로 삭혀내는 힘 누가 알리오. 아름다운 향기 피어 올리는 속깊이 굴곡의 삶 다스리는 아련한 내음 푸릇하고 상큼한 조아림의 모습에 겸손의 미덕 너에게 배우고 지난 겨울 인고의 세월과 매년 피고지는 속절 없는 시간들 마저 어느 인생과 닮아 있는 것을 오늘에야 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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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마당] 시스투스바보 같은 그대 시스투스 제 선택으로 힘든 길 걷고 제 선택으로 제 몸 바치는 바보 같은 그대 시스투스 늦게 깨달아서 미안합니다 이 모든 건 그대의 희생 속에서 피어났습니다 제가 어찌해야 그대의 고통에 보답할 수 있을까요 *시스투스 : 지형이 험난한 절벽에 주로 서식하며, 척박한 땅에 산다. 다음세대를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워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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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마당] 바 다잔잔하던 바다가 앞치락 뒤치락 뒤집혀 진다 너도 나처럼 고요하지 못하구나 누구나 겪는 삶이지만 난 고달프다 허둥지둥 슬기롭지 않게 준비 못한 인생이지만 너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하는데... 내가 내 앞에 있어서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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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마당] 그 날작고 작은 가슴으로 두손 모아 기도하는 그 여린 맘속 깊이 그리운 이름 피어 내듯이 작은 꽃잎 끝에 이슬 맺는다 누군가 보아주기 바라며 땅 밑 가까이 몸을 낮추어 그리운 수액 가득 싱그런 잎들 힘을 주고 남국의 바람을 맞으며 수줍은 꿈을 꾸는 여린 가슴 맑은 날만 피어나는 그 작은 마음에 들어가면 한 올 한 올 엮이는 선명한 자수 같은 꿈들이 보이고 나즈막히 들려오는 대지의 속사임에 귀 기울이면 언젠가 나를 찾을 그리운 발소에 서렘은 피어난다 찬란한 햇볕을 받으며 애절한 그리움 노랗게 빨갛게 짙게 익어가는 꽃잎들, 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