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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문단-소설] 돌배꽃 피고 지듯

-안 혜 숙-

기사입력 2022.09.2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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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령소리와 상두꾼들이 부르는 운상소리는 점차 멀어져가고 바람결에 펄럭이는 만장을 앞세워 행여 뒤를 따라는 꽃상여는 신불산 중턱으로 쉼 없이 가고 있다.


    조금 전에 마을을 뒤로하고 앞산으로 가고 있는 예쁜 꽃상여가 보이지 않을 때 까지 고갯길에 눈길을 멈추고 서있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흩어지면서 애간장을 녹이는 출상만가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한숨을 토해내기도 한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인간 세상 하직하고

    어-허 허화홍 어화 넘차 어화홍

    이제 가면 언제오나 이내 일신 한번 가면 어느 때 나 또 올란고

    어-허 허화홍 어화 넘차 어화홍

    북망 산천이 머단더니 앞산이 북망산천이요

    어-허 허화홍 어화 넘차 어화홍

    서른서이 상두꾼아 발을 맟춰 운상하소

    어-허 허화홍 어화 넘차 어화홍

     

    “아이고 저 어린 것을 두고 우째 눈을 감았을꼬, 쯧쯧쯧”

     

    코맹맹이 소리 끝에 한숨까지 내쉬며 동네 아낙은 말 끝에 혀까지 찬다.

    맞장구를 치던 할멈도 치맛자락 끝을 잡아끌어 눈물을 찍어낸다. 그들은 조금 전 상여 뒤를 짧은 걸음으로 따라가던 여덟 살배기 어린 맏상주를 떠올리는 것이리라.

     

    1

    혜성그룹 기획조정실에 근무하는 정명우는 전무실 비서의 인터폰을 듣고 검토하던 서류를 뒤로 미룬 채 전무실로 간다.

    전무가 반갑게 맞으며 의자에 앉기를 권하지만 그는 바짝 긴장한다.

     

    “지난번 기획조정실에서 기획한 동구권 시장 전략 건 말이야.”

     

    전무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을 건네주는 사이 그는 입이 바짝 탄다.

     

    “어허 정차장, 왜 그렇게 긴장하나? 회장님께서 자네가 올린 동구권 시장 전출 기획안을 추진하라고 하셨네.”

     

    정명우는 놀란 토끼처럼 눈을 흡뜨고 전무부터 쳐다본다.

     

    “여기 일정표가 나와 있네. 당장 폴란드로 가서 지사를 설치하게. 자네 기획을 추진해봐. 그쪽 시장을 공략하라는 지시야. 자넨 일약 부장으로 특진된 걸세.”

     

    전무실에서 나온 정명우는 이제야 해냈다는 성취감에 젖으면서도 한편으론 현지의 판매망 확장에 신경이 쓰여 자료실부터 찾아간다.

    출국을 앞두고 얼마나 정신없이 뛰었는지, 정작 출국 하루 전에야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길에 잠시 주춤거리고 서 있는 아내의 눈길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여보,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의 심증을 알고 있는 듯 아내는 먼저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목소리는 맥이 빠져있다.

     

    “어디 아파?”

    “아니에요. 내일 떠나시니까 오늘 하루는 집에서 쉴 줄 알았는데.”

     

    몹시 낙담한 얼굴표정을 애써 감추는 아내가 갑자기 안쓰럽게 보였다.

     

    “가능하면 오늘은 일찍 들어오도록 노력해 보겠지만, 정말 미안해.”

     

    갑자기 염치가 없어진 그는 슬그머니 현관문을 빠져나왓다. 그래 조금만 참아주라, 지금은 끊임없는 도전이다. 힘찬 그의 발걸음은 어느새 아파트 광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2

    부산행 기차를 탄 정명우는 차창밖에 흐르는 전경을 바라보면서 참담한 마음으로 나무 한 그루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뜬다. 부산역에 내려서도 그는 주위를 여러 번 둘러보고 대합실에서는 일부러 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한 번 더 살펴보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고향으로 가는 버스가 방금 전 떠나고, 다음 차편이 두 시간 이상은 기다려야한다는 말에 그냥 택시를 세우고 무조건 차에 올랐다.

     

    “배내골로 갑시다”

    “배내골이라, 전 그 길을 잘모르는데요. 손님 죄송합니다.”

     

    배내골의 교통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는 두 말 않고 택시에서 내려 시외버스 주차장 주변에 쭉 늘어선 택시 기사들한테 배내골로 갈 수 있는 차가 있는지 타진해 본다.

     

    “타십쇼. 배내골 누구네 가십니까?”

    “그곳을 잘 아시는 것 같군요.”

    “제 처갓집이 그곳이니까요.”

     

    택시기사의 말에 흔쾌히 택시에 오른 그는 차창 문을 조금 열고 고개를 내밀 듯 석남서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문든 어머님과 함께 나들이 했던 유년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절간의 풍경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해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데, 갑자기 택시가 덜컥 멈추는 바람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무슨 일입니까?”

     

    <다음호에 이어서...>

     

     

    * 안 혜 숙

      1990년 <문학과의식>에서 중편소설 ‘아버지의 임진강’으로 신인상 당선

      1991년 중편소설 ‘저승꽃’으로 KBS문학상 수상

      (사)한국문인협회 강화지부 소설분과 위원장, 문학과 의식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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