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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情)’

기사입력 2021.12.2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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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답게 춥다, 강화군의 날씨가 하루 종일 두 자리 가까운 영하권을 오르내린다. 어느 때 보다 ()’이 그리워지는 연말(年末)’이다. ‘()’의 사전적 뜻은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라고 되어있다.

     

    또 다른 해석으로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이라고도 표현한다. 주로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낄 때 나타나는 마음의 동요라고 한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 한편으론 사물도 ()’이 든다. 무생물일 경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렇게 든 정은 일방적이기에 더욱더 순수하고 간절할 수도 있다.

     

    아무튼 ()’은 참으로 소중한 가치다. 어느 누군가는 인간에게 가장 큰 형벌은 외로움이라고 했다. 정을 줄 수 있는 상대가 없다면 외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산속으로 들어가 속세와 현실을 등진 많은 자연인들의 숲속의 나무와 새, 그리고 반려동물들과 삶을 영위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태생적으로 외로움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적인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 간의 관계에 매달린다. 관계는 선택을 부른다.

     

    인생은 B(Birth, 탄생)D(Death, 죽음) 사이 C(Choice, 선택)의 연속이라고 싸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자답게 인생을 설명했다. 인간이 선택하는 그 최종적인 목표가 혹시 ()’이 아닌가 싶다. 물론 물리학적인 면 즉 형이하학적인 면에선 ()’의 축적이 목표일 수도 있지만 그 목표조차도 ()’이란 아주 순수하고 오묘한 형이상학적의 범주(範疇)’라고 보고 싶다.

     

    마음으로 느끼는 ()’과 물리적으로 표현하는 ()’은 하나의 몸체라고 생각한다. 절대 둘이 떨어져서는 존재가 힘든 것으로 생각된다. 율곡 이이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원효대사가 한국불교의 정립을 불러왔다면 이이는 한국의 성리학을 완성시킨 대학자라 할 수 있다. ‘플라톤과 버금가는 인물로 여겨진다.

     

    각설하고 연말(年末)’에 느끼는 마음의 외로움이 몸까지 춥게 만들며 ()’을 그리워하게 하는 것 같다. 작금에 펼쳐지는 정치판 세계는 대선(大選)’이란 가장 큰 경쟁을 두고 날을 세우고 있다. 정책은 실종되고 네거티브가 난무한다. 어느 마타도어가 설득력 있게 유권자들을 흥분시키며 현혹 시킬지 죽기 살기로 시험 중이다. 참으로 가관이다.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합종연횡(合從連衡)‘은 정체성의 실종으로 빚어진 혼탁과 혼돈투성이다. 사상도 철학도 없다. 자연히 서로 간의 ()’은 찾아볼 수도 없다. ‘人間이 살면서 ()’을 빼면 정말 삶 자체가 황폐해진다. ‘()’은 모든 존재의 가장 소중한 요소다. ‘신축년(辛丑年)’의 끝자락에서 지독하게 ()’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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